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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6․25전쟁영웅) 오금손 대위:경인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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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6․25전쟁영웅) 오금손 대위

이영애기자 | 기사입력 2016/03/04 [11:49]

(3월의 6․25전쟁영웅) 오금손 대위

이영애기자 | 입력 : 2016/03/04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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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광복군으로 군생활 시작, 6.25 전쟁시 포항 형산강전투에서 북한군 6명 사살
 대한민국을 지키리라! 아버님, 이 딸이 당신의 유지를 받듭니다
국가보훈처는 오금손대위를 3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
오금손 대위는 1931년 독립운동가 오수암 선생의 외동딸로 북경에서 출생했다.
채 돌이 되기도 전에 부모를 잃은 소녀 오금손은 중국인 가정에서 자라다가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 항일투쟁의 길로 나서게 된다.
해방 이후, 조국에서 개성 간호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개성도립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던 오금손 대위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다시 조국을 지키기 위해 자진 입대하게 된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08월 초 오금손 대위는 포항 형산강지구 전투에서 부상자들을 돌보던 중 병원을 기습한 북한군의 공격을 물리치고 북한군 6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려 2계급을 특진, 대위로 진급하게 된다.
이는 광복군 시절 사격과 전투훈련을 철저하게 받은 결과라고 본인은 회고했다.
아군의 북진 시기에도 늘 전장을 지키며 어려운 역할까지도 묵묵히 감당해냈던 그녀는 금화와 철원 중간지점에 있는 케이(K)고지 전투 중 전우들과 함께 북한군의 포로가 된다.
끊임없는 고문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던 그녀는 적군이 교전에 빠진 순간 탈출을 감행해 부대에 복귀, 끝까지 임무를 수행했다.
탈출 중 입은 부상의 재발로 군을 떠나게 된 이후 향년 74세의 나이로 타계할 때까지 오금손 대위는 늘 조국만을 생각하며 일생을 나라에 바친 영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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